85, 129, 309 #184부산 영도. 2011.11
85, 129, 309 #183부산 영도. 2011.11
85, 129, 309 #182부산 사상 부산구치소. 2011.11
85, 129, 309 #181부산지방법원. 2011.11
85, 129, 309 #180부산지방법원. 2011.11
85, 129, 309 #179부산지방법원. 2011.11
985, 129, 309 #178부산지방법원. 2011.11
85, 129, 309 #177서울 민주노총 앞. 2011.11
시인의 상상력을 가두지 마라! 시인의 양심을 구속하는 정부는 ‘나쁜 권력’이다! - ‘희망버스’ 기획자 송경동 시인의 석방을 촉구하는 〈한국작가회의〉 성명서
지난 18일 밤 부산지방법원은 한진중공업의 노사갈등과 관련해 ‘희망버스’ 행사를 기획하고 주도했다는 이유로 시인 송경동 씨에 대해 특수공무집행방해, 일반교통법방해, 집회와 시위에 관한 법률위반 등 다섯 가지 혐의를 적용해 검찰이 청구한 구속영장을 발부했다. 이에 한국작가회의(이사장 구중서)는 시인 송경동 씨를 구속하는 정부, 곧 시인의 상상력을 억압하는 정부는 ‘나쁜 정부’일 수밖에 없으므로, 정부에 의한 그의 구속을 제대로 된 민주주의 하에서는 있을 수 없는 ‘문화폭압’으로 규정한다. 그러한 이유에서 한국작가회의는 시인 송경동 씨를 지금 당장 ‘무조건 석방하라’고 강력히 촉구한다. 시인의 양심과 상상력을 가두는 처사는 이른바 문화선진국을 자처하는 이 정권 스스로의 논리에도 맞지 않을뿐더러, 다른 어떠한 명분으로도 정당화될 수 없는 표현의 자유에 대한 중대한 도전이며 실질적인 침해임에 분명하기 때문이다. 적어도 지난 10여 년 동안은 양심과 상상력에 입각한 문인들의 행위가 정부의 실정법에 따라 구속된 사례를 찾아볼 수 없지 않은가.
한국작가회의는 ‘희망버스’ 행사를 기획했다는 혐의로 시인 송경동 씨를 구속한 이 정권의 반(反)인권적 처사와 반(反)문화적 행태에 참담한 분노는 물론 참을 수 없는 연민을 금치 못한다. 레임덕의 상황에 직면해 저지르는 이 정권이 단말마적 비명에 어찌 우리가 분노와 여민의 마음을 갖지 않을 수 있겠는가. 이 자리를 빌려 우리는 시인 송경동 씨가 지난 15일 오후 7시 25분경 부산 영도경찰서에 자진 출석해 이틀 동안 경찰의 조사에 임하고 있는 중이었다는 사실을 강조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증거 인멸”과 “도주 우려”를 이유로 구속영장을 집행했으니 이러한 사법당국의 처사를 법의 목적을 사회의 평화에 두지 않을 뿐만 아니라 시민들의 순수한 법 감정을 제멋대로 훼손한 매우 부당한 처사라고 규정하지 않을 수 없다. 제 발로 찾아간 시인 송경동 씨를 도주 우려 운운하며 구속하는 것은 그의 양심을 한낱 파렴치범으로 간주하려는 태도가 아니고 무엇인가. 새삼스럽게 강조할 필요도 없이 정부의 이러한 태도는 ‘희망버스’ 행사와 함께 했던 깨어 있는 시민들의 자발적인 ‘피플 파워’를 아무런 개념 없이 불법으로 매도하는 옹졸한 ‘꼼수’에 지나지 않는다.
시인이란 누구인가. 자신이 위험에 처하게 될 줄 뻔히 알면서도 위험으로부터 피하는커녕 오히려 위험에 처하더라도 두려워하지 않게 해달라고 신을 향해 기도하고 외치는 존재가 아닌가. 시인은 앵무새처럼 국익(國益)을 말하는 정부 및 사용자의 ‘나쁜 말’에 맞서 국익보다 더 소중한 한 사람의 ‘생명’과, 노동자들이 마음껏 노동할 수 있는 ‘자유’와, 우리의 마음속에 깊이 잠들어 있는 ‘평화’를 깨우고 노래하는 존재가 아닌가. 바로 이러한 점에서 ‘희망버스’ 행사는 시인 송경동 씨이기 때문에 상상할 수 있었던 시민참여의 한바탕 축제라고 하지 않을 수 없다. 이를 가리켜 그가 꿈꾸고 열망해온 ‘재미를 위한 혁명’의 한 사례라고 해도 지나치지 않아 보이는 까닭도 바로 여기에 있다. 이러한 점으로 보더라도 시인 송경동 씨를 구속하는 일은 시인의 양심과 상상력이 연출하고, 수많은 시민들이 참여해 만든 일종의 ‘행위예술을 국가권력이 앞장서 훼손해버리는 일이지 않을 수 없다.
한진중공업의 해고노동자 출신 김진숙 부산민주노총 지도위원 등이 309일 간 고공농성을 한 행위는 세계 노동운동사에서도 유례가 없는 엄청난 일이다. 뿐만 아니라 시인 송경동 씨가 시인의 양심과 상상력으로 기획하고, ‘노동하기 좋은 나라’ 및 ‘비정규직이 없는 세상’을 염원하는 다수의 시민들이 참여해 만든 아름다운 연대에의 기적, 곧 ‘희망버스’ 행사 역시 세계 문화운동사에서 유례가 없는 엄청난 일이다. 하지만 정작 유래가 없는 엄청난 일은 김진숙 부산민주노총 지도위원에 의해 309일 간의 고공농성이 진행되는 동안 이 땅에서 살 권리를 박탈당한 비정규직 노동자들의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나아가 한진중공업 노사갈등을 해결하기 위해 정부가 한 일이 거의 없다는 점이다. 시민들은 약자에게 무례하고 무능한 이 정권의 진면목을 ‘희망버스’ 행사를 통해 여러 차례 적나라하게 목격을 한 바 있다. 물론 시인 송경동 씨 등의 노력에 의해 김진숙 지도위원을 비롯한 고공 농성자들이 35미터 크레인 위에서 무사히 내려온 일은 이미 국내외의 뜨거운 관심사가 되어 있지만 말이다.
이에 한국작가회의는 시인 송경동 씨의 구속을 더 나은 사회와 더 나은 문화공동체를 건설하기 위해 불철주야 노력해온 이 나라의 수많은 문화예술인들이 지니고 있는 양심과 상상력을 함부로 침해하고 간섭하는 ‘나쁜 권력’의 대표적인 문화검열 행위라고 규정한다. 어렵게 체결된 한진중공업 노사 간의 합의와, 그에 따른 화해의 정신을 단번에 부정해버리는 정부의 이러한 처사는 머잖아 우리사회 곳곳에 엄청난 갈등과 대립을 불러올 것이 뻔하다. 이러한 면에서라도 한국작가회의는 시인 송경동 씨가 좀 더 빨리 그의 가족과 문학의 현장으로 복귀하기를 희망한다. 만일 즉각적인 석방이 이루어지지 않는다면 시민들과 더불어, 그리고 국내외 저명한 문인들과 더불어 그의 즉각적인 석방을 위해 끝까지 연대하고 투쟁할 것임을 밝혀둔다.
오는 11월 22일(화)은 진작 시인 송경동 씨로 수상자가 결정된 [신동엽 창작상]의 시상식이 있는 날이다. 시인 송경동 씨는 시집 『꿀잠』,『사소한 물음들에 답함』 등의 시집을 통해 ‘시와 행동’이 일치하는 작품을 열정적으로 써온 이 나라의 대표적인 시인이다. 우리는 이날 시상식의 행사가 주인공이 없는 행사가 되지 않기를, 다시 말해 객(客)들의 잔치가 되지 않기를 강력히 희망한다. 이러한 이유에서라도 우리는 정부가 어떠한 조건이나 단서도 달지 말고 ‘지금 당장’ 시인 송경동 씨를 석방하라고 거듭 촉구한다.
2011년 11월 20일(사)한국작가회의
85, 129, 309 #176서울 민주노총 앞. 2011.11
85, 129, 309 #175서울 여의도. 2011.11
85, 129, 309 #174부산 영도 한진중공업. 2011.11
85, 129, 309 #173부산 영도 한진중공업. 2011.11
85, 129, 309 #172부산 영도 한진중공업. 2011.11
85, 129, 309 #171부산 영도 한진중공업. 2011.11
85, 129, 309 #170부산 영도 한진중공업. 2011.11
85, 129, 309 #169부산 영도 한진중공업. 2011.11
85, 129, 309 #168부산 영도 한진중공업. 2011.11
85, 129, 309 #167부산 영도 한진중공업. 2011.11
85, 129, 309 #166부산 영도 한진중공업. 2011.11
85, 129, 309 #165부산 영도 한진중공업. 2011.11
85, 129, 309 #164부산 영도 한진중공업. 2011.11
85, 129, 309 #163부산 영도 한진중공업. 2011.11
85, 129, 309 #162부산 영도 한진중공업. 2011.11
85, 129, 309 #161부산 영도 한진중공업. 2011.11
85, 129, 309 #160부산 영도 한진중공업. 2011.11
85, 129, 309 #159부산 영도 한진중공업. 2011.11
85, 129, 309 #158부산 영도 한진중공업. 2011.11
85, 129, 309 #157부산 영도 한진중공업. 2011.11
85, 129, 309 #156부산 영도 한진중공업. 2011.11
85, 129, 309 #155부산 영도 한진중공업. 2011.11
85, 129, 309 #154부산 영도 한진중공업. 2011.11
85, 129, 309 #153부산 영도 한진중공업. 2011.11
85, 129, 309 #152부산 영도 한진중공업. 2011.11
85, 129, 309 #151부산 영도 한진중공업. 2011.11
85, 129, 309 #150부산 영도 한진중공업. 2011.11
85, 129, 309 #149부산 영도 한진중공업. 2011.11
85, 129, 309 #148부산 영도 한진중공업. 2011.11
85, 129, 309 #147부산 영도 한진중공업. 2011.11
85, 129, 309 #146부산 영도 한진중공업. 2011.11
85, 129, 309 #145부산 영도. 2011.11
85, 129, 309 #144부산 영도 한진중공업. 2011.11
85, 129, 309 #143부산역 광장. 2011.10
85, 129, 309 #142부산 영도. 2011.10
85, 129, 309 #141부산 중구 남포동. 2011.10
85, 129, 309 #140부산 중구 남포동. 2011.10
85, 129, 309 #139부산 중구 남포동. 2011.10
85, 129, 309 #138부산 중구 광복동. 2011.10
85, 129, 309 #137부산 중구 광복동. 2011.10
85, 129, 309 #136부산 중구 광복동. 2011.10
85, 129, 309 #135부산 중구 광복동. 2011.10
85, 129, 309 #134부산 중구 광복동. 2011.10
85, 129, 309 #133부산 중구 광복동. 2011.10
85, 129, 309 #132부산역 앞. 2011.10
85, 129, 309 #131부산역 앞. 2011.10
85, 129, 309 #130서울 용산 갈월동. 2011.8
85, 129, 309 #129서울 용산 갈월동. 2011.8
85, 129, 309 #128서울 용산 갈월동. 2011.8
85, 129, 309 #127서울 용산 갈월동. 2011.8
85, 129, 309 #126서울 용산 갈월동. 2011.8
85, 129, 309 #125서울 경복궁역. 2011.8
85, 129, 309 #124서울 경복궁역. 2011.8
85, 129, 309 #123서울 인왕산. 2011.8
85, 129, 309 #122서울 청계광장. 2011.8
85, 129, 309 #121서울 청계광장. 2011.8
85, 129, 309 #120서울 청계광장. 2011.8
85, 129, 309 #119서울 청계광장. 2011.8
85, 129, 309 #118서울 여의도 국회. 2011.8
그동안 한진중공업 정리해고 문제와 관련해서 많은 국민들이 걱정해 주시고 관심을 가져주셔서 진심으로 고맙습니다. 그리고 보도에 애써 주신 기자분들께도 감사의 말씀을 드립니다. 한진중공업은 계속되는 정리해고로 이미 많은 사람들이 직장을 잃었고 너무 오랜 시간 동안 고통을 당해왔습니다. 2년 사이에 비정규직 노동자들을 포함해서 삼천 명 가까운 사람들이 삶의 터전을 잃었고, 울산, 마산 등에서도(?) 설계실 등이 차례차례 폐쇄돼 왔습니다.
이런 문제에 책임을 진 조남호 회장님이 국회 청문회가 결정되자 해외로 출국하면서 문제들이 점점 커지고 해결이 지연됐었습니다. 이제 귀국을 하셨다니까 결자해지의 차원에서 그리고 이미 전국민적 근심이 돼버린 정리해고 문제를 진정성을 가지고 해결하시리라 믿습니다. 노동자에게 왜 해고가 살인인지, 쌍용차에서 왜 열 다섯 명이나 목숨을 잃어야 했는지 깊이 생각하셨으리라 믿습니다.
한진중공업은 이미 2003년 똑같은 상황에서 두 사람이나 목숨을 끊는 비극을 겪었습니다. 이런 과거들은 시간이 지나면 사라지는 게 아니라 노사 모두에게 상처가 됩니다. 그동안 수많은 노동자들이 칠십 삼년을 피땀 흘리고 청춘을 바쳐서 일궈낸 공장입니다. 그런 노동자들이 길거리가 아니라 일터로 가정으로 되돌아가게 해 주십시오.
그리고 한나라당에 말씀드립니다. 제가 217일 동안 초지일관 요구한 건 정리해고 철회입니다. 정리해고만 철회되면 저는 지금 당장이라도 내려갑니다. 청문회를 빌미로 저도 내려오게 하면 이 사태를 무마시킬 수 있다는 생각을 버리시고 정리해고가 정당했는지 그 과정들을 낱낱히 밝혀 주시는 게 집권당의 임무라고 생각을 합니다.
저의 청문회 참석을 조건으로 청문회를 수용하겠다는 주장은 한진 재벌을 비호하자는 의도로밖에는 생각할 수 없습니다. 막대한 흑자가 난 기업에서 그 흑자를 만들어낸 노동자들이 하루아침에 길거리로 내몰리는 건 아니지 않습니까? 노동자들을 더이상 울리지 마십시오. 더이상 죽이지 마십시오. 아빠가 회사에 복직하는 게 소원이라는 열한 살 아이의 눈물을 더이상 외면하지 마십시오.
늦었지만 부디 이제라도 노동자들이 제자리로 돌아가고 저를 비롯한 이 크레인에 올라와 있는 다섯 명의 노동자들이 무사히 내려가 제자리로 돌아갈 수 있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이 땅에서 더이상 정리해고가 없기를, 비정규직이 없기를 바라는 국민들과 희망버스를 타셨던 분들의 한결같은 염원이고 소원입니다. 고맙습니다.
2011년 8월 10일
김진숙 민주노총 부산본부 지도위원
85, 129, 309 #117서울 여의도 국회. 2011.8
85, 129, 309 #116서울 여의도 국회. 2011.8
85, 129, 309 #115서울 여의도 국회. 2011.8
85, 129, 309 #114서울 한진중공업 용산사옥 앞. 2011.8
85, 129, 309 #113서울 한진중공업 용산사옥 앞. 2011.8
85, 129, 309 #112부산 연제 부산지방경찰청 앞. 2011.7
85, 129, 309 #111부산 연제 부산지방경찰청 앞. 2011.7
85, 129, 309 #110부산 중구. 2011.7
85, 129, 309 #109부산 영도. 2011.7
85, 129, 309 #108부산 영도. 2011.7
85, 129, 309 #107부산 영도. 2011.7
85, 129, 309 #106부산 영도. 2011.7
85, 129, 309 #105부산 영도. 2011.7
85, 129, 309 #104부산 영도. 2011.7
85, 129, 309 #103부산역 광장. 2011.7
85, 129, 309 #102부산 영도 한진중공업. 2011.7
85, 129, 309 #101부산 영도 한진중공업. 2011.7
85, 129, 309 #100부산 영도 한진중공업. 2011.7
85, 129, 309 #099부산 영도 한진중공업. 2011.7
85, 129, 309 #098부산 영도 한진중공업. 2011.7
85, 129, 309 #097부산 영도 한진중공업. 2011.7
85, 129, 309 #096부산 영도. 2011.7
85, 129, 309 #095부산 영도. 2011.7
85, 129, 309 #094부산 영도. 2011.7
85, 129, 309 #093부산 영도. 2011.7
85, 129, 309 #092부산 영도. 2011.7
85, 129, 309 #091부산 영도. 2011.7
85, 129, 309 #090부산 영도. 2011.7
85, 129, 309 #089부산 영도. 2011.7
85, 129, 309 #088부산 영도대교. 2011.7
85, 129, 309 #087부산 영도 한진중공업. 2011.6
85, 129, 309 #086부산 영도 한진중공업. 2011.6
85, 129, 309 #085부산 영도 한진중공업. 2011.6
85, 129, 309 #084부산 영도 한진중공업. 2011.6
85, 129, 309 #083부산 영도 한진중공업. 2011.6
85, 129, 309 #082부산 영도 한진중공업. 2011.6
85, 129, 309 #081부산 영도 한진중공업. 2011.6
85, 129, 309 #080부산 영도 한진중공업. 2011.6
85, 129, 309 #079부산 영도 한진중공업. 2011.6
85, 129, 309 #078부산 영도 한진중공업. 2011.6
85, 129, 309 #077부산 영도 한진중공업. 2011.6
85, 129, 309 #076부산 영도 한진중공업. 2011.6
85, 129, 309 #075부산 영도 한진중공업. 2011.6
85, 129, 309 #074부산 영도 한진중공업. 2011.6
85, 129, 309 #073부산 민주공원. 2011.6
85, 129, 309 #072부산역. 2011.6
85, 129, 309 #071서울 여의도 국회 정론관. 2011.6
85, 129, 309 #070서울 여의도 국회 정론관. 2011.6
85, 129, 309 #069서울 청운동 주민센터 앞. 2011.6
공개 제안문 - 송경동 시인
‘2차 희망의 버스’를 타러 가요
지난 6월 11일 밤 12시 머나먼 부산 영도에서 촛불을 들었던, 가난한 우리는 다시 2차 ‘희망의 버스’를 타기로 했습니다.
한국근현대사의 아픔과 절망의 상징인 저 85호 크레인 위에 있는 한 여성노동자를 구하러 갑니다.
‘당신이 희망입니다’라고 적혀진 양말 하나씩을 나눠주며, 우리가 떠난 뒤 다가 올 탄압과 고요가 두려워 서럽게 울던 한진중공업 해고노동자들의 아내들과 아이들을 구하러 갑니다.
십수년간 목 잘려나간 수백만 노동자들, 900만에 이른 이 참혹한 비정규직 시대를 구하러 갑니다. 그 아픔의 현장에서 두 어깨가 축 늘어진 우리들의 ‘소금꽃’ 한진중공업 해고노동자들을 구하러 갑니다.
다시는 누구도 함부로 잘려 생의 벼랑에 서는 일이 없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갑니다.
무엇보다 우리 자신을 구하러 갑니다.
신자유주의 시대 돈만이 최고인 이 살벌한 착취와 경쟁의 시대를 넘어 한 사람 한 사람의 삶이 평화롭고 평등하며 존중받는 세상을 만들기 위해, 그런 세상을 우리 미래 세대에게 물려주기 위해 갑니다.
이 버스는 모든 정리해고와 비정규직화에 반대하고, 그 누구의 삶이던 조금은 더 안전한 사회를 우리 스스로가 주체가 되어 만들자는 연대의 버스, 실천의 버스입니다. 왜 모두가 연대해서 생산하는 사회적 가치가 소수 자본가들의 금고로만 들어가야 하는지를 질문하고자 하는 버스입니다. 그래서 이 버스는 한국 사회의 새로운 변화를 염원하는 희망의 버스이기도 합니다. 누가 얼굴 내밀자고 가는 버스도 아니고, 누굴 또 시대는 변하지 않은 채 영웅으로 만들자고 가는 버스가 아닙니다. 모두가 평등하고 평화로워야 한다는 가장 단순한 진실들이 맑고 투명해지기를 바라는 버스입니다. 너무나 평화로운 버스이고, 너무나 소박한 버스이고, 너무나 아름다운 버스입니다.
두려워하지 않았으면 좋겠습니다.
2차 희망의 버스 185대가 전국 각지에서 아이들의 손을 잡고, 연인의 손을 잡고, 친구의 손을 잡고, 동지의 손을 잡고 출발하는 2011년 7월 9일은, 아마도 한국사회 운동의 역사상 중요한 날로, 우리가 잊지 못할 가장 아름다운 역사의 한 날로 기억될 것입니다. 그날은 80년 광주의 5.18과 87년 6월과 7,8,9를 잇는, 2008년 촛불광장을 잇는 소중한 디딤돌이 될 것입니다.
그런 희망으로 다시 2차 희망의 버스 185대의 출발을 전 사회적으로 제안합니다. 6.11일 그 눈물겹고도 신나던 밤을 함께 했던 모든 날라리들께 제안합니다. 모든 지역의 숨은 양심들께 제안합니다. 광주에서, 순천에서, 전주에서, 수원에서, 평택에서, 하남에서 또 어디에서 1차 희망의 버스를 타주신 소중한 분들의 마음을 모아 제안합니다. 다른 세상으로 이제 우리 출발합시다. 이제 한진중공업의 저 소통부재의 낮은 담이 아니라, 행복에 겨운 소수들을 위해 평범한 다수가 고통의 바다 속에서 살아야만 하는 이 잘못된 장벽을 넘읍시다.
이번엔 185대입니다. 그날만 가는 것이 아닙니다. 7월 9일을 두고, 우리 모두 할 수 있는 모든 일을 합시다. 벌써 누구는 일주일마다 희망의 봉고, 희망의 자전거를 타고 가겠다고 합니다. 그날 김치 한 조각이 없어 맨밥을 먹던 설움을 없애고자 한 차 분량의 쌀과 김치를 보내겠다는 촛불 시민들이 계십니다. 사진가들은 부산 지역 작가들과 함께 한 달 동안 한진의 절망을 카메라에 담겠다고 합니다. 백기완 선생님과 박창수 열사 아버님 등 유가협 어르신들이 맨 첫 차를 타시겠다고 합니다. 이런 연대의 마음들이, 공동체의 마음들이 잡혀 갈 일이라면 1번으로 자신들을 내세워주시겠다라고 합니다.
7월 9일 전까지 우리 모든 귀를 열고, 눈을 열고, 손을 내고, 발을 냅시다. 7월 9일 전에 한진중공업 정리해고 문제가 해결되고, 저 눈물겨운 여성노동자 김진숙이 살아 내려올 수 있게 합시다. 매일 계단을 내려가는 훈련을 한다는 저 눈에 피눈물이 아니라 환한 웃음을 돌려줍시다.
그가 정말 박창수, 김주익, 곽재규 열사의 떠도는 혼들을 고이 안고 이 안전한 평지로 내려 올 수 있게 합시다. 6월 12일 우리를 배웅해주며 그 누구랄 것도 없이 펑펑 울던 그 가족들과 아이들의 눈물을 딱아 줍시다.
그렇게 모두가 눈물바람을 하며 떠나온 뒷날, 김진숙 선배가 트위터에 썼더군요.
“희망의 버스 한번만 더 와주면 저도 살아 내려 갈 수 있을 것 같은데요.”
울지 맙시다. 더 이상 우리만 피눈물을 흘리지 맙시다. 더 이상 절망하지 맙시다.
그 시간에 조직합시다. 그 시간에 단 한 대의 버스라도 더 만듭시다. 누가 말을 걸어 올 거라고 기다리지 말고, 김진숙이 열 여덟 시절 했던 화진여객 버스 안내양처럼 내가 이 희망의 버스의 안내원이라고 생각하고, 사람들에게 말을 건네주십시오. 이 세상에 태어나 가장 아름다운 소풍을 가는 길이라고 말해 주시고, 저들의 모든 비방과 왜곡을 넘어 진정한 평화마음의 이 무엇인지를 가르쳐 주십시오.
간곡히 호소합니다.
이 어두운 시대 절망의 벽을 넘으려면 내 마음을, 우리의 마음을 먼저 열어야 합니다. 그 열린 마음들이 전혀 다른 열린 세계로 우리를 인도할 것이라 믿어 봅니다.
* 이 공개 제안문은, 6월 15일 <비정규직 없는 세상만들기> 전체회의(민주노총, 인권단체, 종교단체, 문화단체, 사회단체, 학술단체 등 50여개 사회단체 참여) 결정과, 당일 오후 2시 기자회견 시 백기완 선생님을 비롯한 사회원로 선생님들, 그리고, 6.11일 함께 해주었던 서울과 지역의 희망버스 참가자 분들의 마음을 모아 작성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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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5, 129, 309 #067부산 영도 한진중공업. 201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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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회 ‘박종철인권상’을 수여하게 된 수상소감
시퍼런 청년을 열사로 부르는 일이 나는 아직도 낯설다. ‘인연’ 때문에 더 그럴 것이다. 박종철이 대공분실에서 죽어나왔다는 소식을 들은 건 내가 거기 다녀온 지 몇 달 후였다. 그의 죽음을 보면서 내가 다녀온 곳이 얼마나 무서운 곳이었는지 내가 겪은 일들이 얼마나 끔찍한 일들이었는지 비로소 실감났다. 그는 죽고, 그와 한 시대를 살았던 사람은 살아서 크레인에 오른 지 152일째. 선배의 이름을 불지 않는다는 이유로 사람을 죽이는 시대. 죽음으로 역사가 된 청년의 이름을 우리는 6월 항쟁의 거리에서 목이 터져라 불렀다. 그 부름은 7,8,9월 노동자 대투쟁으로 이어졌고 전국 곳곳에서 하루 저녁에도 수 백 개의 노동조합이 세워지고 어용노조가 민주노조로 바뀌었다. 불량 냈다고 따귀 맞고 5분 지각했다고 하루 일당이 까이던, 손가락이 잘리고 다리가 부러져도, 심지어 사람이 죽어도 산재가 뭔지도 몰랐던 공순이 공돌이들이 노동자라는 본명을 쟁취했던 개명천지. 이 크레인에서 보는 바로 맞은편에 그의 집이 있었다. 선배와의 약속을 목숨처럼 여겼던 한 청년이 죽었고, 길 하나를 사이에 둔 이 크레인에선 조합원들과의 약속을 지키기 위해 새끼들과의 약속을 어겼던 한 노동자가 죽었다. 그리고 그 죽음들이 고스란히 빚이 된 내가 다시 크레인에 올라 그의 집이 있던 자리를 내려다본다. 역사는 아직도 이렇게 가혹하다. 인연이 빚이 되고 죄가 되는 세상은 아직 끝나지 않았다. 그저 묵묵히 자기 몫의 밭을 갈 뿐이다. 그렇게 돌을 골라내고 바위를 들어내며 황무지를 갈다보면 꽃도 되고 감자도 열고 고구마도 캘 날이 오려니 하는 믿음으로. 25년 전 한 청년이 쓰고자 했던 민주주의를 온 몸으로 써내려가는 우리조합원들에게 이 상이 위로가 되길 바라며 곳곳에서 싸우는 노동자, 청년학생들, 민중들의 하루하루가 박종철이 살고 싶었던 세상으로 이어지는 나날임을 되새기고자 한다. 박창수, 김주익, 곽재규를 잊지 않고 기억해주신 분들에게 감사드린다.
2011년 6월 6일
크레인고공농성 152차 김진숙 올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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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이 129일, 2003년 김주익 지회장이 이 85호 크레인에 매달려 있던 마지막 날이다.
그때도 구조조정이라는 살인행위가 있었고 거기에 저항해 우리는 2년을 싸웠다.
2년 만에 약속한 노사합의는 쓰레기처럼 버려졌고 그날밤, 김주익 지회장이 이 크레인에 올랐다.
그는 끝내 이 크레인 위에서 목을 맸고 2주일 후 곽재규라는 노동자가 또 죽었다.
그리고 8년 회사는 다시 정리해고의 칼날을 빼들었고, 1700억 원의 영업이익이 났고, 경영진들은 수백억의 주식배당금을 챙겼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긴박한 경영상의 이유라는 게 해고사유였다.
그리고 나는 지난 1월 6일 이 크레인에 올랐고 오늘이 129일째, 상황은 2003년도와 똑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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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진숙 지도위원 14번째 편지글(크레인 고공농성 39일차)
대일아, 한 번도 본적도 없고 얘기를 나눠 보지도 않았지만 얼마 전 촛불집회 때 써 보낸 편지에 나를 누나라고 불러줬으니 편하게 동생이라고 부르마.
내가 해고되지 않았고 너 또한 해고되지 않으면 우린 조립팀에서 김주익 지회장과 함께 이용대 대의원 같은 분들과 조립팀 동료로, 선후배로 평화롭게 살고 있을 것이다.
그러나 나는 해고됐고 너는 해고를 앞두고 있고 김주익 지회장은 죽었다.
노동자에게 해고란 해고될 당시에만 상처받고 아픈 게 아니라 평생을 따라다니는 낙인이고 아물지 않는 상처다.
더군다나 함께 민주노조를 세우겠다고 매일 저녁 만나서 회의하고 토론하고 유인물을 뿌리고 짓밟히고 두들겨 맞아가며 투쟁을 함께했던 박창수 위원원장을 잃고 나는 평생을 죄인으로 살았다.
나 때문에 박창수 위원장이 죽었다는 죄책감 때문에 대공분실에서 그 치욕을 겪으면서도 징역살이의 고통을 겪으면서도 나는 이 길을 벗어날 수 없었다. 가고 싶어도 갈 수 없었다.
너에겐 일곱 살 짜리 딸과 세 살짜리 아들이 있다고 했느냐.
박창수 위원장에겐 여섯 살 짜리 아들과 세 살 짜리 딸이 있었다.
그가 죽고 20년 세월이 넘도록 용찬이가 어떻게 컸는지, 예란이가 몇 학년인지, 그 부인이 어떻게 사는지 한 번도 마음 편히 안부를 물을 수가 없었다.
그가 위원장에 당선되던 날 나는 감옥에 있었고, 내가 감옥에서 나왔을 땐 그가 감옥에 있었다. 그가 징역에서 출감도 못한 죄수의 신분으로 죽었을 때 나는 수배 중이었다.
몇 달 더 고생하면 만날 수 있을 거라 굳게 믿었던 사람이 너울너울 만장 앞세우고 동지들의 어깨에 멘 관에 담겨 영도다리를 넘어 오던 날,
내가 할 수 있는 건 그냥 우는 거밖엔 없었다. 내가 울고 있을 때 아저씨들은 화염병을 들었다.
대일이 네가 선배, 형님이라고 부르는 아저씨들이 안기부에 화염병을 던지며 몇 달을 싸워 지켜낸 생존권이고 노동조합이다.
형님들은 한이 많은 사람들이고 나는 죄가 많은 사람이다. 그 이후로도 동지들의 죽음을 차례차례 묻으며 형님들은 여기까지 왔다. 이젠 너희들이 형님들을 지켜 줄 차례다.
여기서 더 이상 밀리면 안 되지 않겠느냐. 더 이상 빼앗기면 안 되는 거 아니겠느냐.
한 인간의 탐욕을 위해 수백 명이 죽을 순 없는 거 아니냐.
생각만 해도 목이 메이는 우리 새끼들 지켜야 되지 않겠느냐.
울산에서 내쫒기고 그 상처가 가시기도 전에 너를 또 쫒아내겠다는 회사.
설사 이번에 빠진다 하더라도 자본은 더 큰 아픔으로 우리를 짤라 정규직의 씨를 말릴 것이다.
네 동생에게 해고통보서를 보낸 한진 자본.
본가에까지 해고통보서를 보내 부모님들한테 까지 충격을 준 저 짐승만도 못한 놈들과 싸워 꼭 이겨야 하지 않겠느냐.
꼭 이겨서 미칠 듯이 보고 싶은 아이들한테로, 사랑하는 마누라한테로 환하게 웃으며 돌아가자.
네가 형님들을 믿고, 형님들이 동생들을 믿어 준다면 우린 오대일로 이길 수 있다.
한진중공업의 모든 오대일들, 투쟁!
2011년 2월 13일
크레인 고공농성 39일차 저녁촛불문화제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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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월 3일 아침, 침낭도 아니고 이불을 들고 출근하시는 아저씨를 봤습니다. 새해 첫 출근날 노숙농성을 해야 하는 아저씨의 마음은 어땠을까요? 이 겨울 시청광장 찬바닥에서 밤을 지새운다는 가장에게 이불보따리를 싸줬던 마누라는 어떤 마음이었을까요? 살고 싶은 겁니다. 다들 어떻게든 버텨서 살아남고 싶은 겁니다. 지난 2월 26일. 구조조정을 중단하기로 합의한 이후 한진에선 3천 명이 넘는 노동자가 짤렸고, 설계실이 폐쇄됐고, 울산공장이 폐쇄됐고, 다대포도 곧 그럴 것이고, 300명이 넘는 노동자가 강제휴직 당했습니다. 명퇴압박에 시달리던 박범수, 손규열 두 분이 같은 사인으로 돌아가셨습니다. 그런데 400명을 또 짜르겠답니다. 하청까지 천 명이 넘게 짤리겠지요. 흑자기업 한진중공업에서 채 1년도 안 된 시간 동안 일어난 일입니다. 그 파리목숨들을 안주삼아 회장님과 아드님은 배당금 176억으로 질펀한 잔치를 벌이셨습니다. 정리해고 발표 다음날. 2003년에도 사측이 노사합의를 어기는 바람에 두 사람이 죽었습니다. 여기 또 한 마리의 파리목숨이 불나방처럼 크레인 위로 기어오릅니다.
스물 한 살에 입사한 이후 한진과 참 질긴 악연을 이어왔습니다. 스물 여섯에 해고되고 대공분실 세 번 끌려갔다 오고, 징역 두 번 갔다 오고, 수배생활 5년 하고, 부산시내 경찰서 다 다녀보고, 청춘이 그렇게 흘러가고 쉰 두 살이 됐습니다. 산전수전 다 겪었다 생각했는데 가장 큰 고비가 남았네요. 평범치 못한 삶을 살아오면서 수많은 결단의 순간들이 있었습니다만 이번 결단을 앞두고 가장 많이 번민했습니다. 85호 크레인의 의미를 알기에... 지난 1년. 앉아도 바늘방석이었고 누워도 가시이불이었습니다. 자다가도 벌떡 벌떡 일어나 앉아야 했던 불면의 밤들. 이렇게 조합원들 짤려나가는 거 눈뜨고 볼 수만은 없는 거 아닙니까. 우리 조합원들 운명이 뻔한데 앉아서 당할 순 없는 거 아닙니까. 더 이상 피할 수 없는, 정면으로 붙어야 하는 싸움이라고 생각했습니다. 전 한진조합원들이 없으면 살 이유가 없는 사람입니다. 제가 할 수 있는 걸 다해서 우리 조합원들 지킬 겁니다. 쌍용차는 옥쇄파업 때문에 분열된 게 아니라 명단이 발표되고 난 이후 산 자 죽은 자로 갈라져 투쟁이 힘들어진 겁니다.
지난 일요일. 2003년 이후 처음으로 보일러를 켰습니다. 양말을 신고도 발이 시려웠는데 바닥이 참 따뜻했습니다. 따뜻한 방바닥을 두고 나서는 일도 이리 막막하고 아까운데 주익 씨는.. 재규 형은 얼마나 밟히는 것도 많고 아까운 것도 많았을까요. 목이 메이게 부르고 또 불러보는 조합원 동지 여러분!
- 김진숙 올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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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의 첫사랑이자 마지막 사랑일 조합원 동지 여러분.
스물 한 살, 그때 저는 아저씨들이 보고 싶어 회사에 왔습니다. 그래서 제일 먼저 출근했고 지각, 결근 한 번 안 했고 특근 한 번 안 빠졌습니다. 쥐가 빠진 물에 살얼음 낀 도시락을 말아 먹으면서도 버틸 수 있었던 건 그 밥을 함께 먹는 사람들이 있었기 때문이고 철판에 두 다리가 깔려 입원을 했다가도 되돌아올 수 있었던 것도 주전자에 죽을 끓여다 주셨던 아저씨들이 계셨기 때문입니다.
콩두유를 사들고 오셔서 제발 한 모금만 마시라던 마음. 따뜻한 문자를 보내주시는 마음. 기나긴 편지를 써 주신 마음. 무릎을 꿇고 단식을 풀라고 울던 마음. 저를 염려하시고 걱정하시는 그 깊은 마음들을 제가 왜 모르겠습니까. 하지만 상황은 하나도 달라진 게 없습니다. 저들은 여전히 30% 구조조정을 말하고 희망퇴직, 단협개악을 말하고 있습니다. 그 결과들은 울산, 다대포, 율도의 폐쇄와 급기야는 영도의 폐쇄 내지는 축소, 플랜트 사업 등으로의 업종 전환으로 이어지겠지요. 이걸 막아내지 못한다면 우린 필연적으로 하청으로 떠돌 것이고 이미 하청인 노동자들은 어디로 갈까요.
제 하나 밖에 없는 동생이 노숙자로 길에서 죽었습니다. 수백 번 저를 넘어지게 하고 수천 번 저를 일으켜 세웠던 동지 여러분. 저의 뜻이 왜곡되는 모멸감을 이기기 힘들어 단식 6일 째 마음의 위기를 겪었고 14일 되는 날 몸의 위기를 넘었습니다. 단식 16일만에 처음으로 여러분들과 마주서면서, 마치 상사병을 앓던 사람이 연인을 만난 듯 다시 일어섰습니다. 사주신 콩두유는 승리하면 먹겠습니다.
16일 동안 정문과 신관 사이를 한 번도 벗어난 적이 없습니다.
그렇게 여러분들 곁에 있겠습니다. 승리하는 날까지..
단식 17일째.-해고자 김진숙 올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