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이가 들다 Aged』
국립중앙의료원 발간 MAGAZINE 00(공공) VOL.2
[실리지 못한, 실을 수 없었던, 쓸데없는 작업노트]
2020년 10월 중순 국립중앙의료원 커뮤니케이션실에서 이메일을 보냈다. 국립중앙의료원에서 계획하고 있는 포토에세이 형식의 매거진 발간 사진작업을 함께할 수 있는지 물었다. 공공보건의료의 다양한 주제 중 (1) invisible, 感染, (2) aged, 老, 두 가지를 주제로 매거진 제작을 계획하고 있다고 했고 두 가지 가운데 어느 주제를 더 다루고 싶은지도 물었다. 두 가지 모두 선뜻 정하기 어려운 난감한 주제였지만 주제 (1)은 『2020 국립중앙의료원, covid-19 pandemic』이라는 제목으로 국립중앙의료원이 직접 작업해서 발간했고 자연스럽게 주제 (2) ‘나이 듦’에 관한 작업을 맡게 됐다.
이 주제는 ‘2020년 현재 노인인구 800만, 2025년엔 치매인구만 100만. 이런 상황에서 기존의 치료 중심 의료 체계, 병원 체계는 작동할 수 있을까?’라는 물음을 바탕에 깔고 있다. 의료 체계 안에서뿐만 아니라 점차 고령화되는 사회를 우리는 얼마나 대비하고 있을까, 얼마나 고민하고 있을까 라는 물음을 던지고, 고민해야만 한다고 촉구하는 주제다. 작업을 하다 보니 서서히 진행되는 듯 보이나 실은 급속히 진행되고 있는 이 현상은 관심 없는 사람들에게 지금은 보려고 해야만 보이는 정도지만 곧 보지 않으려 해도 보이는 심각한 문제가 될 것이었다.
상황은 좋지 않았다. 주제가 넓었다. 게다가 처음에는 11월 한 달 동안 작업 후 12월에 발간하는 계획을 제시했다. 악화되는 코로나 상황과 맞물려 발간 기한은 늘었지만 늘어난 만큼 주제가 좁혀지지는 않았다. ‘나이 듦’을 다룬다고 나이든 사람만을 찍으려고 한 것은 아니었지만 기본은 나이든 사람을 찍는 일이 아닐 수 없었다. 쉽게 나이든 사람들을 만날 수 있는 공공장소들은 방역 방침에 따라 막혔고 노인정이나 요양원 같은 시설 또한 방문할 수 없었다.
결국 살아오면서 맺었던 인연 속에서 작업을 찾아야 했고, 찍어오면서 남겼던 작업 속에서 인연을 찾아야 했다. 다행히 없던 걸 새로 만드는 작업이 아니라 인연 속에서 만들어지고 만들어 나가는 일이라는 게 그나마 맘을 편하게 했다.
그 즈음 즐겨보던 EBS <건축탐구 집>에 나온 이종민 전북대 교수의 사연은 처음부터 표지에 넣고 싶었다. 치매를 앓고 있는 아흔이 넘은 어머니를 전북 완주 옛집에 모시며 바로 옆에 ‘화양모재’라 이름 붙인 새 집을 지어 살고 있는 모습이 이 책의 주제를 잘 표현할 수 있다고 느꼈다. 책을 만드는 중에 이종민 교수도 수십 년 다니던 학교에서 퇴임해 제 2의 인생을 시작했다. 그런 과정들이 작업 주제와 어울렸다.
예전 두물머리 싸움의 인연이 연결해 준 두물머리 달력 속 마을 할머니들도 금세 떠올릴 수 있는 인연이었다. 옛 인연들을 얼마 거치지 않고도 부용리 할머니들과의 새로운 인연을 시작할 수 있었다. 코로나로 할머니들을 만나고 다니는 게 부담이 됐지만 할머니들은 낯선 인연조차 반가워하며 맞아 주셨다. 양승임, 이홍교, 한봉금 할머니. 그들을 연결해 준 김현숙 데레사 님. 몇 번 찾아가는 와중에 만난 옛 두물머리의 인연들까지 모든 것이 책 작업 이상이었다. 다만 겨울철 농한기여서 농촌의 평범한 노인들처럼 일하는 모습을 담기까진 좀 오랜 시간이 걸렸고 발간 기한 때문에 농사가 한창일 때를 담을 수는 없었던 것이 한계였다.
밀양 765kV 송전탑 건설 반대 싸움 때 만든 책 『밀양을 살다』 속 할머니들을 생각한 건 자연스러운 일이었다. 그러나 세월이 흐르며 당시에도 고령이던 할머니 몇 분은 돌아가셨고 남은 분들도 예전처럼 움직이기 어려웠다. 젊은 축에 속했던 상동면 여수마을의 김영자 총무님만 몇 번 찾아갈 수 있었다. 나이가 들고, 사람은 떠나고.. 50대였던 김영자 총무님의 나이도 어느덧 예순 중반을 넘기고 있다. 그래서 밀양은 송전탑과 더불어 이젠 ‘나이 듦’이다.
춘천에서 왕진 진료하는 양창모 선생님과 최희선 간호사님, 정윤후 케어매니저 팀을 만난 건 기쁨이었다. 애초 이 아이템은 국립중앙의료원 쪽에서 신문 기사를 보고 제안했다. 춘천 수몰지역 왕진 진료를 따라가 사진 찍고 얘기를 나눠 보니 밀양 송전탑 반대 싸움과 한진중공업 희망버스의 인연들이 이어져 있었다. 한 번 따라붙을 예정이었는데 일부러 한 번 더 약속을 잡아 함께했고 책 작업과 무관하게 또 따라갈 정도로 작업 이상의 인연을 선물 받았다.
의료원에서 하는 일이라 의료 체계 안에서의 촬영은 조건이 어렵지 않을 거라고 예상했지만 코로나 상황 속에선 그조차 쉽지 않았다. 꾸준히, 조용히 관찰하며 사진에 담는 작업 방식이 익숙하지만 코로나는 그럴 시간과 여건을 주지 않았다. 외과 병동 두 개 층을 촬영할 기회가 있었지만 여러 번 요청하기란 쉽지 않았다. 여러 번, 오래 있을수록 운이 좋으면 더 좋은 사진을 찍을 기회가 있었겠지만 현실은 어려웠다. 병동에 공지를 하긴 했지만 환자들과 부딪치는 건 오로지 혼자만의 몫이었다. 날카롭게 긴장하고 눈치를 보며 대상을 찾아야 했고 환자들이 불쾌하게 여기지 않게 하려고 숨 죽여 찍어야 했다. 그 와중에도 남들은 모르는 작은 인연들이 만들어진 일은 작은 가능성이었다.
처음 호스피스 병동을 찾아갔을 때는 들어가자마자 곧 그 무거운 분위기를 느끼며 카메라를 들지도 못하고 돌아 나왔다. 죽음을 준비하는 사람과 가족한테 발간을 전제로 사진을 찍는 일은 병동에서 입원환자를 찍는 일과는 하늘과 땅 차이였다. 뒤에 한 가족과 환자의 동의를 얻어 잠깐 동안 찍을 기회가 겨우 생겼다. 정말 잠깐의 시간이었고, 사진을 찍고 20여 일 뒤 그분은 돌아가셨다. 이 모든 과정이 ‘나이 듦’이었다.
십 수 년 전 만난 인연이 남긴 사진도 끌어왔고 노들장애인야학을 중심으로 만난 장애인들과의 인연도 끌어당겼다. 탈시설 작업 과정의 장면도 도움 받았고 노동자들 오체투지 현장에서도 ‘나이 듦’과 관련된 장면을 찾느라 눈을 부릅떴다.
한두 달을 예상하고 작년 10월에 시작한 작업이 해를 넘겨 6월까지 이어졌다. 그 사이에는 코로나 상황이 있었고, 국립중앙의료원 커뮤니케이션실이 기획조정실 소통기획팀으로 재편되며 담당 직원도 바뀌는 과정이 있었다. 처음엔 작업시간이 부족할까 봐 근심이었는데 작업시간이 길어질수록 빨리 매듭 짓고 싶어졌다. 코로나와 편제 변경 말고도 여러 가지 일들이 이어져서 시간이 늘어났다고 밀도가 깊어지지는 않았다.
중대재해기업처벌법 제정을 위한 노력의 시간들. 오체투지, 단식농성. 김진숙 민주노총 부산본부 지도위원의 정년을 앞두고 한진중공업 복직을 위한 노력의 시간들. 단식농성, 부산에서 청와대로 향한 행진.
오체투지하는 사람들을 찍고 단식농성하는 사람들을 찍었다. 김진숙 지도위원과 연대자들이 부산에서 청와대로 행진하는 34일의 걸음 중 13일을 같이 걷고 나머지 시간엔 청와대 앞에서 단식농성하는 친구들을 보러 갔다.
부산 신라대학교 청소노동자들과 서울 엘지트윈타워 청소노동자들, 아시아나케이오와 한국게이츠, 대우버스 등 수많은 곳의 노동자들이 해고의 위협에 맞서 싸웠고 비정규직들은 여전히 차별 철폐를 외치며 인간답게 살고 싶다고 하늘로 오르거나 땅바닥을 기었다. 장애인들은 세종시 정부청사 인근에서 2021년에도 자신들이 탈 수 없는 버스 밑에 기어들어가 멈춰 세우고 항의해야 했다. 누더기 중대재해기업처벌법이 통과된 것과는 무관하게 노동자들은 꾸준히 깔려 죽고 떨어져 죽었다. 그 사이 친구 백기완 선생님도 세상을 뜨셨다. 이런 과정도 ‘나이 듦’과 무관하지는 않을 텐데 이 작업과 연결시킬 능력은 없었다.
몇 번의 회의를 거치면서 사진과 글은 따로 가기로 했다. 의료원에서 사진가의 글을 따로 원하지는 않았다. 한편으론 사진 작업만도 힘에 부쳐서 글을 쓰지 않아도 된다는 사실이 다행이라고 여겨지기도 했지만 뭔가를 빼놓고 가는 것 같은 허전함을 느끼기도 했다. 작업에 충실하지 못하다는 생각이 머릿속에 계속 남았지만 글을 써서 집어넣겠다고 요청할 마음의 여유가 당시에는 없었다. 발간한지 두 달이 돼 가는 지금 이런 글을 끄적거리는 이유다.
나중에, 언젠가 다룰 것 같았던 주제를 국립중앙의료원 제안 덕분에 생각지도 않게 일찍 경험해 봤다. 꾸준히 이어갈 여유는 역시 없다. 쉽지 않은 일이라는 걸 확실하게 깨달은 것이 교훈이었다. 다른 작업을 하며 우연히 마주칠 때마다 이때를 기억하겠지만 당장 눈앞에 놓인 일들은 여전히 숨 돌릴 틈 없이 돌아간다. 그 안의 사람들 누구 하나, 어느 한 순간 나이 들어가고 있지 않는 경우란 없다는 걸 한숨 돌릴 때마다 느끼는 것 또한 작은 교훈이다. 치열한 싸움, 뜨거운 분노, 당연한 일들과 무시 사이의 갈등, 사람 사는 일의 치사함, 먹고 사는 일의 준엄함, 사람들 사이에서 느끼는 외로움, 옛 일과 다가올 일이 던지는 슬픔 이런 것들을 ‘나이 듦’과 연결해 작업할 수 있는 능력이 언젠간 생길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