밀양, 포클레인 밑의 평화 (<말과활> 창간호 2013년 7-8월호)

2017-06-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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밀양, 포클레인 밑의 평화


1. 

불안하다. 자기 일이 아닌 일에 이렇게 느끼는 사람이 얼마나 많은지는 모르겠지만 거리의 사진가한텐 내 일이 아님에도 불안을 느낄 일이 많다. 대추리에서 기륭에서 한진중공업에서 쌍용에서 그랬다. 밀양도 마찬가지다. 가보지 않아도 들려오는 소식 조금만으로도 불안을 느낀다. 어떤 일이 벌어질지 어떻게 전개될지 깊숙하게는 몰라도 대강은 알 수 있기 때문인데 대한민국이라는 나라가 이전의 경험으로 알게 해 줬다.


그 불안한 마음을 안고 지난 5월 23일, 24일 밀양을 찾아갔다. 한국전력은 5월 20일부터 신고리 원전에서 경남 창녕의 북경남 변전소를 잇는 765kV 송전선로 건설공사를 다시 시작한 상태였고 밀양시 부북면, 상동면, 산외면, 단장면 네 지역을 지나는 52개(81번~132번) 송전철탑은 주민들이 8년째 막아내고 있었다. 공사가 시작된 20일 당일부터 언론에는 경찰과 한전 직원인지 용역인지 모를 사람들에 맞서 웃옷을 벗고 밧줄로 목을 매며 처절하게 싸우다 병원으로 실려가는 할매, 할배들의 모습이 실렸다. 이후 약 열흘 동안 이런 충돌이 이어지다가 결국 29일 국회 산업통상자원위원회 에너지소위의 중재로 밀양 765㎸ 송전탑 반대대책위원회와 한국전력 및 산업통상자원부가 '밀양 송전탑 건설 관련 전문가협의체 구성 중재안'에 합의하면서 40일 동안 공사는 멈췄다.



23일엔 오후에 도착해 그날 공사가 끝난 뒤라 경찰과 한전 직원들이 빠진 공사현장만 둘러봤다. 단장면의 바드리마을을 지나 산으로 올라가는 길에 89번 송전탑 현장이 있고 닦이지 않아 울퉁불퉁한 임도를 차로 15분 정도 더 올라가면 길이 끝난 곳에서 양쪽으로 84번, 85번 현장이 나온다. 양쪽 모두 길 중간에 멈춰 세워진 포클레인으로 막혀 있다. 아마도 내일 저 포클레인 밑에서 할매, 할배들이 쇠사슬로 몸을 묶으리라. 멀리 떨어진 곳에서 이런 저런 매체를 통해 보는 것만으로는 파악이 되지 않던 많은 정보들이 들어오기 시작한다. 더불어 내일 공사가 시작되면 무슨 상황이 벌어질지도 머릿속에 그려지기 시작한다. 그게 두려운 일이다. 그 장면들을 머릿속에 그리면서 사진으로 어떻게 담을지 고민하는 것이 두렵다. 차라리 어떻게 싸울지 고민하는 것이 낫겠다 싶다가도 역할이 따로 있는 거라고 스스로 다독이며 넘어가기 마련이다. 언제나 그렇듯.


포클레인을 지나면 철탑이 세워질 공사현장이 나온다. 산 능선 양쪽 비탈의 나무가 대부분 베어져 있고 비탈진 경계에는 자루에 흙을 담아 쌓아 놨다. 아마도 철탑의 다리가 놓일 자리에는 어른 예닐곱 명이 감싸 안을만한 크기의 거푸집이 세워져 있다. 다리 하나가 이 정도면 철탑의 크기는 정말 어마어마할 것이다. 쌍용자동차의 문기주 정비지회장, 한상균 전 지부장, 복기성 비정규직지회 수석부지회장이 171일 동안 올랐던 평택의 철탑은 154kV 송전탑이었다. 그 철탑도 아찔하게 높아보였는데 여기 세워질 철탑은 154kV 송전탑보다 열여덟 배나 많은 전류를 보내며 높이는 140미터에 달한다고 한다. 직접 보지 않으면 상상하기조차 힘들다. 얼마 전 충남 당진을 지나가다가 흔히 보던 송전탑과는 비교도 할 수 없을 정도로 거대한 송전탑들이 이어진 모습에 차를 멈추고 봤던 기억이 났는데, 다음날 한전 직원한테 물어보니 역시나 당진 지역의 송전탑이 밀양에 세우는 것과 같은 765kV 송전탑이라고 한다. 밀양의 주민들도 그래서 당진으로 견학을 갔었다고 하니 그 거대한 철탑을 실제로 본 주민들이 철탑 아래서 사람이 살아갈 수 있을 것이란 생각을 절대로 하지 않는 것이 당연하게 이해가 간다.



2.

다음날 새벽 두 시 반부터 단장면 동화전 마을회관 앞에 할매, 할배들이 모이기 시작한다. 한전 직원들이 모이기 전, 세 시부터 바드리마을 공사현장을 막아야 한다고 한다. 동화전마을 할매, 할배들이 바드리마을 주민들은 한 사람도 없는 바드리마을 공사현장으로 꼭두새벽부터 올라가는 이유는 굳이 묻지 않았다.


84번과 85번 현장이 갈라지는 곳에 도착하자마자 먼저 와 있던 한전 직원 몇 명이 주민들을 둘러싸고 범인 다루듯 사진을 찍어댄다. 주민들은 묵묵히 양쪽 포클레인 밑으로 들어갔다. 85번 현장 포클레인 밑으로 들어간 할매 둘은 괄괄하다. 들어가자마자 쇠사슬로 포클레인에 몸을 묶는다. 경찰이나 한전 직원이 와도 지지 않는다. 여긴 걱정이 없다. 반면 84번 현장 포클레인 밑으로 들어간 할매 둘은 얌전하다. 조용히 들어가 앉아 얘기를 나누다가도 한전 직원들 인기척이 나면 바로 자는 척 눕는다. 강한 햇살이 만들어내는 거친 빛과 그림자. 그 속에 포클레인 무한궤도와 할매들의 고단한 몸과 신발이 어우러진다. 애달프다. 이 작은 몸들이 목숨을 걸고 여기 누웠다는 걸 한전 직원들은 알까.



시간이 갈수록 한전 직원들과 경찰이 많아진다. 한전 특별대책본부에서 나왔다는 사람들이 거친 말투로 할매들을 다그친다. 어서 나오라고. 그들 앞에서 할매들은 외부세력에 휘둘리는 바보 멍청이가 됐고, 밀양765kV송전탑반대대책위원회 공동대표 김준한 신부와 이계삼 사무국장은 불순한 외부세력이 됐다. 85번 현장과 달리 몸을 묶지 않고 있던 84번 현장 할매들의 쇠사슬을 공사감독이라는 사람이 낚아채 갔다. 그제야 할매들이 밧줄로 몸을 묶는다. 이어서 서른 명 남짓한 남녀 직원들이 포클레인 앞에 와 앉는다. 물어보니 인근 한전 직원들이 교대로 나온다고 한다. 현장을 둘러보곤 혀를 찬다. ‘착한 할머니들이 이 더운 데서…….’


다 들리는데, 끌끌 혀 차는 소리가 다 들리는데 일도 못 보고 자는 척 해야만 하는 할매들한텐 이런 모욕이, 이런 폭력이 없다. 결국 84번 현장의 두 할매는 새벽 세 시에 올라와 일곱 시간을 버틴 뒤 병원으로 실려갔다. 평범한 회사원처럼 보이던 이들이, 할매들의 안전을 걱정하던 이들이 포클레인을 둘러싸고 칼로 밧줄을 자른 뒤 흙 담는 자루에 할매를 둘둘 말아 사진도 못 찍게 상자조각으로 할매 얼굴을 가리고 데려가 버렸다.


어리둥절했다. 할매들이 더위에 쓰러지지나 않을까 걱정하던 평범한 일반 직원들이 상관의 지시 한 마디에 그런 짓을 할 수 있다는 것이. 경찰이든 직원이든 용역이든 이런 일을 겪어보지 못한 건 아니지만 밀양에서 맞닥뜨린 상황은 약간 충격이었다. 마치 빨리 끝내버리고 더위를 피해 퇴근하고 싶은 사람들처럼 보였다.



3.

한나 아렌트가 홀로코스트를 집행한 나치 전범 아돌프 아이히만의 예루살렘 재판을 보고 펴낸 책 『예루살렘의 아이히만』의 부제는 ‘악의 평범성(banality of evil)에 대한 보고서’다. 재판정에 선 아이히만은 수백만의 유대인을 학살한 괴물의 모습이 아니었다. 노년에 접어든 평범한 남자였다. 아주 평범하고 이성적이고 근면한 모습까지 보여준 아이히만이 악마 같은 행위를 했던 건 사고의 무능력, 곧 ‘생각 없음(thoughtlessness)’ 때문이었다. 아렌트는 “대부분의 악행은 선해지거나 악해지기로 결심한 적이 결코 없는 사람들에 의해 저질러진다. 이것은 슬픈 진실이다”라고 말한다. 밀양 산 속에서 만난 평범한 한전 직원들 덕분에 ‘악의 평범성’, ‘생각 없음’ 두 말이 머릿속을 맴돈다. 주민들 처지에 대한 생각 없이 주어진 일에 충실하며 만족을 즐기는 삶에 대한 경고다.


밀양에 오기 전에 느낀 불안의 정체는 이것이었다. 두 말이 밖으로 드러나는 장면과 마주칠까봐 불안했다. 공권력일 수도 있고 폭력일 수도 있고 강제철거나 조롱, 위선일 수도 있다. 그런 것들을 아무 생각 없이 저지르는 무리를 만나는 것이 불안하다. 사람이 사람한테 해서는 안 될 일이고 슬픈 일이기 때문에. 용산의 외침, “여기 사람이 있다!”는 그래서 다시 듣고 싶지 않은 구호다.



그날이 지나고 며칠 뒤 전문가협의체가 구성돼 40일 동안 공사는 멈췄다. 농번기라 주민들에겐 숨통이 트이는 일이지만 잠깐 동안의 불안한 평화일 뿐이다. 전문가협의체 아홉 명은 대책위 쪽 셋, 한전 셋, 국회 셋으로 구성되는데 국회 몫이 여야와 여야 합의 추천 위원장 한 명으로 구성되기 때문이다. 이에 대해 5월 28일 국회에서 열린 토론회에서 이계삼 사무국장은 “결론이 내려지면 따라야 합니다. 너무 잔인한 거 아니에요? 한 사람이 어느 한편에 서면 5대 4가 됩니다. 수많은 사람들의 목숨이, 8년의 투쟁이 5대 4에 결판난다는 게 너무 끔찍하지 않습니까? 독소조항입니다. 주민들은 모 아니면 도인 목숨을 건 도박을 하는 거예요!”라고 울부짖었다.


이 사무국장의 말 가운데 “당신의 생존권을 지키기 위한 투쟁이지만 실은 아주 높은 수준의 공적인 대의를 체현하고 있다고 생각합니다”라는 말도 기억에 남는다. 그래서일까. (사)민주열사박종철기념사업회는 6월 7일 제9회 박종철인권상을 ‘밀양 할머니·할아버지들’한테 건넸다. 시상식에 온 밀양 네 마을의 할매, 할배들은 얼마나 억울한 게 많았는지 소감을 말하려고 마이크를 잡기만 하면 하나같이 울먹였다. 상동면에서 온 할매가 울면서 외친 물음은 가슴을 먹먹하게 만든다. “사실 묻고 싶습니다. 우리한테 인권은 있는 것인지. 그 말을 묻고 싶습니다. 우리나라에 인권이 있는 나랍니꺼?”



40일이 지난 뒤 7월에 밀양에서 어떤 일이 벌어질지는 아무도 모른다. 이 글을 쓰는 6월 10일에도 서울 대한문 쌍용차 농성장, 환구단 재능교육 농성장, 양재동 현대차 비정규직 노동자들의 농성장이 철거됐다. 어김없이 경찰, 구청 직원들의 폭력이 있었다. 임무에 충실했다고 생각하는 그들의 생각 없음에 무서운 악이 숨어 있다. 그래서 밀양 40일의 평화가 헛된 일로 끝나지나 않을까 하는 불안감이 또 밀려든다. 밀양에서 벌어진 폭력 뒤에 평화가 오지 않는다면 뒤에 올 폭력은 더 큰 폭력일 것이기 때문이다. 공사 말고 농사짓는 모습을 보는 것이 이 나라에서는 왜 이렇게 힘든 것일까.


격월간 <말과활> 창간호 2013년 7-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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