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말해
밀양 상동면 도곡마을


“이걸 우째 이고 왔는교?”, 『밀양을 살다』, 오월의봄, 2014





송전탑 저게 9년째 아이가. 산 만데이까정 얼매나 가고, 대닐 만치 대니고 마이 했다 아이가. 손 끄트이 다 벗겨져가미 기어 올라갔다 카이. 올라가는 데 세 시간 걸리대. 올 봄에는 요놈의 손들이 계속 다니니께 하도 분해가 시청 앞에 앉아가 내가 실컷 울어뿟어. 남이 보기나 말기나 실컷 울어뿟더니만, 수녀 아줌마들이 와가지고 “할매 와카시는교? 와카시는교?” 한이 맺히고 원이 맺혀가, 북받쳐서 웁니다. 원통해서 울고 분해갖고 울고 한이 맺혀가 웁니다. 눈물밖에 안 남았심더, 눈물밖에 안 남아서 웁니다. 그랬다 카이. 


요놈의 손들, 여기 전시만시(온갖 데) 와가지고 온갖 거 다 세워놓고. 우린 못하구러 말릴라꼬 온 전시 다 댕기고. 세상 그렇게 못하구러 하고, 저건 할라 카고. 우린 저거 들어오면 못 사는데. 땅 손바닥만 한 거 사놨는데 물거품 되는데. 언제 누가 살아도 여긴 물 좋고 공기 좋고. 손주들 와서 살고 누가 와도 다 잘살 낀데. 자꾸 밑으로 내려오믄 이제 못 산다. 송전탑 저거 보통 것도 아니고 76만 5,000볼트 디게 센 게 와가, 저 청도 가서 갈라진다 카이. 밑에 산소도 파내라고 지랄병하는데 우야겠노. 그게 우리 시아바시 산소 옆도 지난다니까. 저거도 해로우니께 산소 파내라 카지. 센 게 들어오만 2, 3년 있으만 감도 안 되고 아무것도 안 되는 기라. 저거 오면 이 골짜기 못 산다. 

···

이 골짜기 커갖고 이 골짜기서 늙었는데 6·25 전쟁 봤지, 오만 전쟁 다 봐도 이렇지는 안 했다. 이건 전쟁이다. 이 전쟁이 제일 큰 전쟁이다. 내가 대가리 털 나고 처음 봤어. 일본시대 양식 없고 여기 와가 다 쪼아가고, 녹으로 다 쪼아가고 옷 없고 빨개벗고 댕기고 해도 이거 카믄. 대동아전쟁 때도 전쟁 나가 행여 포탄 떨어질까 그것만 걱정했지 이러케는 안 이랬다. 빨갱이 시대도 빨갱이들 밤에 와가 양식 달라 카고 밥 해달라 카고 그기고. 근데 이거는 밤낮도 없고, 시간도 없고. 이건 마 사람을 조지는 거지. 순사들이 지랄병하는 거 보래이. 간이 바짝바짝 마른다. 못 본다 카이, 못 봐.



김사례
밀양 부북면 평밭마을


“오목조목 살림하며 사는 게 남은 소망이라”, 『밀양을 살다』, 오월의봄, 2014










7년간 이어져온 투쟁이다. 그녀는 이곳 부북면 움막을 지키며 다른 할머니들과 최선을 다해 싸워왔다. “이렇게 최선을 다했는데도 결국 송전탑이 들어온다면.” 송전탑이 하나둘 세워지기 시작하면서 이 질문이 늘 이마에 걸려 있다. 그래도 앞으로는 어디서든 송전탑을 세우는 게 쉽지는 않을 것이다. 7년 동안 투쟁을 해오면서 그녀들은 지칠 대로 지쳤다. 그리고 ‘저들’이 원하는 것도 바로 이것이다. 송전탑이 자고 나면 떡 보이고 자고 나면 떡 보이고…… 맥이 하나도 없다. 살맛이 안 난다. “이게 들어오면 우리가 생명을 보존하고 살 수 있을까. 눈만 뜨면 시야를 가로막고 괴물같이 서 있을 텐데.” 그녀들의 한숨이 깊어진다. 


송전탑은 그녀들의 집에서 멀지 않은 곳에 세워지고 있다. 바람 불면 소리가 휘휘 난다. 철탑만 들어오겠나, 싶다. “나중에는 완전 거미줄처럼 새끼를 칠 거다.” 시야를 가로막는 송전탑을 보며 막막한 심정으로 기도하듯 읊조린다. “이래서 우리가 그렇게 목숨 걸고 싸웠던 거구나. 내가 싸우지 않다가 이걸 봤으면 얼마나 후회했겠나. 송전탑 안 들어오게 하려고 그리도 오래 싸웠는데 그래도 들어왔구나. 그러나 역시 싸웠으니까. 이제 어쩔 수 없다. 내 힘으로는 되지 않는가 보다. 더 이상 무슨 할 말이 있겠나. 우리 정말 많이 싸웠다. 밤낮없이.” 송전탑 건설을 막는 싸움은 이렇게 자기 자신과의 싸움이 되었다. 싸웠기에 후회가 없다.


조계순
밀양 상동면 도곡마을


“소인으로 태어나 이만하면 됐다”, 『밀양을 살다』, 오월의봄, 2014












(경찰들은) 겁 안 나요. 내 재산이 없어져서 애가 쓰려 갔지. 내 뭐 도둑질했나, 거짓말을 했나? 그런 거 걱정하는 건 없었습니더. 또 내가 너무 억울하고 이래가 그 뭐꼬 희망버스가, 손님이 그리 많이 왔을 적에 아무것도 말할지도 모르고 글자도 모르는 내가, 하도 어찌 원통한지 사람들이 저래 저렇게 참 도와주로 오니 얼마나 감사한 마음인동 그래가 내가 고맙다 하는 말을 거서 했어요, 마이크 들고. 그래 하고 나니 속이 좀 후련하더만. 


사람이 아무리 부자라도예 남의 도움 없이는 못 삽니더. 꼭 돈 가지고 집에만 들어앉아 사나? 그 돈을 활용을 해야 되는데 돈 쓰는 것도 서로 의지를 해가지고 쓰는 것도 있고, 모을 적에도 그 집이 참 그만큼 노력해가지고 그만큼 잘살아야지, 그 마음이 안 큽니껴? 그렇기 때문에 나도 마실에서 혼자 이렇게 살면 이놈의 전기가 우예 된다, 싱크대가 우예 된다, 보일러가 우예 된다, 그걸 돈 주고 할라 캐도 여기 기술자가 있노, 뭣이 있노? 다 이 주위에서 봐줘가지고 그리 잘 삽니더. 사람이 다 울력으로 삽니더, 울력으로예. 


이사라
밀양 부북면 평밭마을


“바다처럼 너불이가 있더라구”, 『밀양을 살다』, 오월의봄, 2014








그런데 한전 사람들이 진짜 잘못을 했어. 한전 사람 너희는 안 된다. 사람은 이치에 맞게 살아야 해. 순리를 어기면 안 돼. 순리를 어기면 그 집 꼬라지가 어떻게 되겠어? 순리를 어기면 안 돼, 그런 마음이야. 너희는 구데기만도 못하다, 어떻게 재산을. 이렇게 재산을 강탈해가면서. 지금 온 사람은 어쩐지 몰라도 내가 어찌케 살았는데…… 그러코롬 할 줄 모르는 호미로 풀 뽑고 할 줄 모르는 짐승들 기르고 살아왔는데. 이 땅을 네놈에게 준다 말이고. 안 돼, 안 돼. 보상? 보상을 1억 천만 원을 준다 쳐도 우리 농사하는 사람들 못 산다, 이거야. 살 수가 없어. 사람들 보면 반갑고, 이 사람들이 얼마나 고생을 하고 사랑을 하는데, 그러고 내만 살고 끝나? 2세들도 여기 와서 어머니 살게 하고 좋은 거 진짜 아는데. 그리고 손자 손녀가 있잖아. 그놈들한테 물려주어야 하는데. 내 손녀들만 물려주나? 그게 아니고, 이 나라 이 땅에 젊은이들, 후손들한테 썩은 땅을 줄 수가 없구나. 그런 아픔을 가진 내가 네놈들 오면 내 몸을 고스란히 던지더라도 이 땅은 못 뺏어간다. 못 준다라는 거야. 그러니 내가 유난히 더 욕하고 더 소리 지르고 하지.

···

그런데 나는 이 화악산이 밀양 전체를 살린다고 보거든. 왜? 북풍이 세잖아. 북에서 오는 바람이 세잖아. 밀양에 하우스고 농사를 많이 하잖아. 산이 없으면 농사를 못해. 그런데 어떻게 그런 산을 함부로 할 수 있어? (나한테는) 생명도 연장이 됐고 건강도 주고, 돈도 뭐 아쉬워하지 않게 다 도와주고 온갖 맛있는 거 다 주고. 30년 동안 그 아름다운 것을 배우고 살았고, 진짜진짜. 어떻게 그걸 말로 다 하겠어. 한 번도 갚지도 못하고…… 이 산을 위해서 어떻게 보람된 일을 해야 하는데, 이 맘밖에 없어. 


손희경
밀양 부북면 위양마을


“아버님예, 너무너무 힘들어 죽겠심니더”, 『밀양을 살다』, 오월의봄, 2014









아휴…… 나도 심정이 흐트러지지. 와 이렇게 살아야 되노? 나가 와 이렇게 살아야 되노? 아휴…… 비행기가 안 다니까 살겠다. 저 빌어먹을 놈들은 와 점심도 안 쳐먹고 참도 안 쳐먹노 하거든 내가. 자꾸 가는 기야 신나게. 점심 먹고 참 먹으면 시간을 좀 둔다 아이가. 어느새 저게 126번 탑이 우뚝 서분 기야. 어우 답답해라. 내 공사는 이제 무너져뿟다. 내는 헛살았고 내 공사는 저거같이 무너져뿟다 하면서 울면서 앉았었지. 저거 우뚝 서고 완공되고 나니께 뭐 살맛도 없고. 우야건 내가 참 마치고 간다는 게 원인데. 어느 순간에 여 닥칠라는지. 세상에…… 이런 일이 들어올 줄은 내 꿈에도 생각 안 했으요. 이런 일이 들어올 줄 알았으면 그 당시에 쫓겨났으면 쫓겨났지 (시아버지에게) 내 답 안 했지. 내가 참 소박을 당해 쫓겨나왔으면 나왔지…… 

···

내 소원이, 요거를 못 막고 가면은 한이 맺히고. 막고 가면은 세상 천지에 이런 게 어딨노? 춤을 얼마나 출지도 모리겠고. 요걸 못 막고 갈까봐 그게 탁 가슴에 언치지 뭐. 이걸 막고 가야만 우리 아버님한테 안 쫓겨나오는데. 우리 아버님요, 참 깐깐하고 무십습니더. 아버님 때문에 이 철탑 말기지 아니면 뭐 그냥 남들 하는 대로 따라가면 되지. 

그때는 무슨 뜻인지, 그래 내 생각에 철탑이 들어오는지 아셨구나. 고향을 지키라 하는 그기, 그때는 무슨 뜻인지…… 그래 이제 와서야 아, 철탑이 들어오는지 아셨구나, 이 양반께서 아셨구나


곽정섭
밀양 부북면 위양마을


“해보고 싶어. 승리의 만세를 부르던, 안 부르던”, 『밀양을 살다』, 오월의봄, 2014











돈이 중요한가 봐. 그리고 한창 할 때 우리 100만 원 가처분신청 받아서 갔을 때 한전이 “소 한 마리에 30만 원 주께 가서 도장 받아온나” 이렇게 했어요. 소 한 마리 30만 원씩 주면 그건 철탑이 들어오면 반드시 해롭다는 것을, 소 한 마리 30만원씩 주면 해롭기 때문에 그렇게 주는 거 아이겠습니꺼. 가처분신청 받아가지고 법원에 갔는데 마지막에 할 말 있으면 하라 카대. 그래 내가 “여게 한전 놈들도 있지마는 생각해보이소. 소 한 마리 30만 원 주면 사람 한 마리는 얼마 주는교?” 물으니 대답도 안 합디다. 

···

나는 지금 생각에는 지금꺼정 내가 하던 일을 그만두면 안 될 거 같애. 탁 한 번 해보고 싶어. 끝까지 해가 승리의 만세를 부르던, 안 부르던 끝까지 해가꼬 반대를 하고 나갔던 사람들이, 내한테 누님이라 하고 그렇게 잘 대해주던 사람들이 나를 버리고 나가서 너무 힘들기 때문에 나는 그 사람들 때문에도 더 해야 될 꺼 겉애. 물러서지는 못할 거 같애. 안 그렇나. 그라고 동네에 나이 많은 사람들이 참 나를 좋아했거든. 동네 첨 와가지고 그래도 내가 앞에 서가 모든 거를 다 해줬거던. 해줬는데 반대하고 나갔기 때문에, 그만큼 나한테 잘해주던 사람들이 반대하고 나갔기 때문에 그 사람들을 봐서라도 내가 이 일을 끝내고 싶어. 진짜 좋게 끝내고 싶어.


이종숙
밀양 산외면 보라마을


“돈한테는 안 되는가봐요. 힘듭니다”, 『밀양을 살다』, 오월의봄, 2014











‘모과 두 덩이도 못 세는 내가’ 이장이 되었다고 농담하지만 그는 이 싸움의 본질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었다. 마을 안에서 갈등과 대립이 진행되며 공동체가 차츰 깨어지는 것을 목격하면서도 최선을 다해 그것을 지연시키면서 ‘남한테 부끄럽지 않은 사람다움’을 지키려고 애쓴다. 


한전은 2014년 2월 7일 보라마을에서 30세대의 동의를 받아 마을 합의를 체결했다고 발표했다. 그리고 한 달 후 100% 마을 합의를 체결했다고 선전했다. 


“‘2013년 연말까지 보상금을 타가지 않으면 마을 자금으로 회수한다’는 공식 발표가 있고 나서, 순식간에 아홉 가구만 남긴 채 합의가 이루어졌다. 새로운 임기를 시작한 지 석 달밖에 되지 않은 이장님은 ‘반대대책위의 지시를 따른다, 희망버스 때 동의 없이 참가자 숙소를 배정해주었다’는 당치도 않은 이유로 해임되어버렸다.”(<이계삼의 세상읽기>에서, 한겨레 3월 27일)


그는 마을에 있으며 이것은 아니라고 뜻을 밝히고 있다. “내가 한 말에 후회도 없고 생각도 달라지지 않았다”며 그는 여전히 그곳을 지키고 있다.


권영길, 박순연 부부
밀양 부북면 위양마을


“정부에서는 전체 거짓말을 하고 있어예”, 『밀양을 살다』, 오월의봄, 2014


“한전의 말은 전부 다 거짓말이거든요. 사람이 별별 희한한 짓을 하니까 한전 말은 못 믿습니다. 와 그러냐면 여기 주민들, 시장에 가는 사람들 차에 태워가지고 식사까지 시키고. 나중에 밥 먹고 온 사람이 나한테 이야기를 합니다. 한전에서는 나를 잡을라꼬 벨벨 짓도 다 했어예. 내가 고발도 돼 있제, 가처분도 돼가 있제. 또 내 집에까지 찾아와 밤낮조로 꼬일라고 ‘대문 좀 열어줘’ (내가) ‘가거라. 나는 너이 만나면 여 몬 살고 이사를 가야 한다. 내 만날라 카믄 이 자리 움막에 온나’ 하믄 여겐 안 옵니다. 세상을 살아가는 데 돈이 전부는 아닙니다. 양심껏 살아야 그기 사람 가치가 있지. 돈이 지금 인자 내 벌어놓은 것만 해도 다 못 쓸 건데. 절대 돈 거는 추접은 돈이고 필요 없는 돈입니다. 돈 모할낀데? 사람이 살아가는 데 똑바로 살아야 합니다.”

···

“내가 보기에는 일본에도 원자력이 50여 개인데, 원자력이 터진다 카믄 3킬로가 가도 사람이 몬 산다 카는데. 그 안에 먹을거리는 정부에서 인정한다 캐도 그거는 안 팔린다고 내는 보지. 근데 정부에서는 전체 거짓말을 하고 있어예. 나쁜데 괘안타. 이거 앞으로 멀게 보고 지하로 묻어부면 안전하다 아입니꺼. 여게 밀양에 4개 면 주민들이 지금 지하로 묻는다 카믄 전부 다 대환영할 깁니다.”


구미현
밀양 단장면 용회마을


“세상일에 관심 끊고 무심히 살 수는 없습디다”, 『밀양을 살다』, 오월의봄, 2014









그래서 다 잊어버려야지, 밀양 올 때 그런 생각했어요. 그냥 이제 나 혼차 조용히 살아야지, 이런 거 이제 다 잊어버리겠다, 다 생각 안 해야지 하고 들어왔거든요. 그래서 한 몇 년 동안 내 생활에만 몰두했고 거의 신문또 안 봤습니다. 거의 다 잊은 듯했어요. 잊은 듯했는데, 이 송전탑 문제가 불거진 거예요. 그때 내가 처음 느낀 게 내 혼자 무심히 살 수는 없는구나. 사회의 끈은 어떻게든 엮여서 이 송전탑 줄을 따라서 내한테 또 따라왔어요.

···

그래도 그때 쌍용이니 전 사업장이 다 힘들어했다 아입니까. 우리가 이렇게 힘들게 있으면 안 되겠다, 일어서야겠다. 그래서 우리가 용기도 주고 우리도 받고 하자. 그래서 버스 하나에다 떠났습니다. 전국 갈등 현장에 가서 우리 다 힘내자고. 한진중공업을 시작으로 해가지고 서울에 평택, 유성기업도 갔고 용산참사 추모행사를 하는 대한문 앞에도 갔던 것 같고 곳곳을 다녔어요. 용기가 생기더라고예. 서로서로 손잡고 하면 되겠다. 너무나 많은 곳에서 힘든 사람이 너무 많으니까. 우리 다 손잡고 서로 기운내고 그렇게 다시 일어서자.


희망버스 1차에 와서 그날 동화전에 치고 같이 올라갔었을 때 굉장히 뜨뜻하다나 그런 느낌이 있더라고예. 1차 저지선을 뚫고 막 사방으로 올라가기 시작했잖아요. 단 한 번도 뚫어본 적이 없거든예. 거기서 있는 힘을 다해서 밀고 댕기고 할 때, 참 연대의 힘이랄까. 외롭지 않은 투쟁. 이게 일회성으로 끝난 것 같지만 우리한테는 계속 남아 있어요. 이래 싸우면서도 많이 힘들어도 쫌 덜 외로워요. 이렇게 하면 저쪽에서 다 알고 있다, 시민들이 걱정하고 있다, 이런 게 있어요.


김영자
밀양 상동면 여수마을


“시작한 날이 있으니 끝도 안 있겠습니꺼”, 『밀양을 살다』, 오월의봄, 2014









그녀가 준비하는 슬픔을 가늠해본다. 내 가늠이 끝나기도 전, 그녀는 허리를 곧추세우고 앉았다. 어느새 밀양 골짜기 안에 자리 잡은, 그녀가 그토록 사랑한 여수마을을 넘어 세상을 향해 눈을 돌린다. 차마 묻지 못한 싸움의 끝을 스스로 말했다. 

“싸움을 시작한 날이 있으니 끝도 안 있겠습니꺼.”

나는 숨을 멈췄다. 그녀는 아무렇지도 않다. 

“지금 어떤 상황으로 끝날지 모르지만 우리가 할 수 있는 거는 다 해봐야 되지 않겠습니꺼. 나는 이 싸움이 여기서 멈출 것 같진 않아요. 지금 내 마음으론. 나중에 내 생활이 어떻게 변할지 모르겠지만, 이건 우리만의 싸움이 아니잖아요. 그 사람들 때문에 용기를 낼 수 있고. 탈핵이 우리가 살 수 있는 길이 되지 않을까. 내 지역의 미래를 보면 우리 지역에 송전탑이 안 들어서는 게 맞죠. 우리나라의 미래를 보면 탈핵이 되는 게 맞는 거 같아요. 이 싸움이 끝이 나도 ‘나는 함께할 것이다’라는 생각을 갖고 있어요. 우리 아들이 ‘이 싸움이 끝이 나도 엄마는 끝이 안 날 거 같습니다’ 해요. 나는 못 잊을 거 같아요. 우리 사회에 아파하는 곳이 많다는 걸. 이 순간들이 영원히 기억에 남을 거 같아요. 우리 싸움이 끝나도 그곳 사람들에게 힘이 되어주고 싶어요, 작지만. 우리도 이렇게 많은 분들 도움을 받으며 싸우고 있잖아요.”

그녀의 싸움은 끝이 아닌 시작을 향해 달려간다.


안영수, 천춘정 부부
밀양 산외면 골안마을


“어떤 대가를 치르더라도 고향은 지킬래예”, 『밀양을 살다』, 오월의봄, 2014











아무 연고도 없는 사람이 와서 도와주고 이래 하는데, 하물며 우리 고향이라고 있는 사람들이 밑에 동네 사람도 그렇고 위에 있는 사람도 마찬가지고, 고향땅을 지킨다고 하면 그 무엇보다 더 큰 대가를 치르고도 지켜야 된다는 의리가 있어야 되는데 돈 몇 푼에 눈이 어두버가지고 그렇게 한전 사람들한테 합의를 해준다고 하는 건 있을 수 없는 일입니다. 


송전탑 관련해가지고 다음에 고향 사람들이 와가지고 고향 이래 카면은 내가 바로 뭐라 칼 겁니다. 너거 고향 소리하지 마라, 고향 카면서 고향이 이래 난리를 지겼는데(쳤는데) 너거는 한 기 뭐 있나? 객지 생활하다 와가지고 고향, 고향 카민서 와가 그 소리하는 데가 고향이 아니다. 진짜, 고향이 이렇게 어려우면 너거가 와서 말이라도 한마디 하고 갔느냐? 우리가 어데 경찰하고 대치하고 있으면, 너거도 같이 마스크 끼고 와가지고 경찰보고 욕이라도 한마디 한 적 있느냐, 무슨 고향이냐? 고향이 아무렇게나 있어도 뭐 고향이 문제가 없단 말이냐, 엄청 뭐라 칼라고. 내가 그렇게 얘기하면 저거는 아마 꼼짝 못할 거야. 


박은숙
밀양 단장면 동화전마을


“포기할 수 없지예, 우리가 끝은 아닐 테니까”, 『밀양을 살다』, 오월의봄, 2014







그전에는 솔직히, 데모하기 전에는 뭐 용산참사라던지 쌍용자동차라던지 그런 사건들, 강정마을 뭐 저런 사건들, 다들 남 일이라고 생각했어요. 내 일하고는 전혀 상관없다고 생각했는데 이 일 하고 나면서부터, 내가 데모를 하면서 정부에서 하는 꼬라지를 보니까 왜 저 사람들이 옥상에 올라가면서 저렇게까지 했는지 알겠더라고요. 그래서 세상 보는 눈이 많이 달라졌지예, 이거 하면서. 정부가 얼마나 우리 국민을 우롱하면서 정치를 하는지 확실히 알았습니다. 갖고 노는 거지, 완전.

지금은 그냥 막연하게, 내가 이런 많은 경험, 왜 경험이 많으면 생각도 넓어진다 아입니꺼, 그래서 앞으로 내가 어떤 일을 할라꼬 이런 일을 겪나, 그냥 궁금합니더. 내가 앞으로 어떤 일을 할지. 그니까 저는 이제 포기도 물론 하고 싶을 때도 많지마는, 포기보다는 끝까지 한번 해보는 거지, 이러면서 견뎌볼라고예. 그러면서 앞으로 제가 해야 될 일, 주어지는 일이 있으면 그냥 해볼라고예. 그게 뭔지는 모르겠어예, 하하하.


옛날에도 내가 정치는 쇼인 건 알았거든예. 근데 이걸 하면서 완전히 쇼인 걸 제대로 알았어예. 그니깐 정부에서도 너거는 뒤지봐라, 뭐 이런 거 같아예. 정부에서 하자 카는 대로 안 하면 너거 함 죽어봐라 이런 거 같은 느낌이 많이 들기 때문에, 우리가 뭐 송전탑 싸움을 꼭 이긴다 카는 문제는, 그때는 막연하게 이겼으면 하는 희망이라도 있었는데, 지금은 그런 희망은 없을 것 같고. 우리가 송전탑을 세운 걸 뽑아낸다거나, 아니면 지금 중단을 시킨다거나 뭐 이런 힘은 없는 거 같에요. 근데 이걸 함으로 해서 많은 사람들한테 송전탑이 얼마나 잘못됐고 뭐 이런 거를 알릴 수 있는 계기는 만들어준 거 같에요. 그래서 우리 밀양이 아닌 다른 지역에서 이런 일이 있다면 더 잘 싸우지 않을까, 잘 싸울 수 있는 노하우가 생기지 않았을까 뭐 이런 생각은 듭니다. 우리가 끝은 아닌 것 같으니까.


강귀영
밀양 단장면 동화전마을


“헬기 소리 때문에 없는 병도 생기겠어요”, 『밀양을 살다』, 오월의봄, 2014









저는 집에서 애들만 돌보고 밥하고 학교 보내고 집안일 하다가 나도 모르게 그렇게 되더라구요. 레미콘 차 들어올 때 그날 할머니들 하는 거 보고. 경찰들이 할머니들한테 너무 심하게 하는 거예요, 여경들이. 저그 엄마 즈그 아빠도 그렇게 못하는데 완전 손을 꼬집는 게 멍이 시퍼럴 정도로 팔을 비틀거나 온몸을 다 비트는 거예요. 완전 꼼짝달싹도 못하게. 그거 보고 나서 내가 막 여경한테 얘길 했거든요. “너희 할머니들한테 너무 심하게 하는 거 아니냐, 너희도 그렇게 한번 당해보면, 안 겪어봐서 모르지. 이때까지 여기서 농사짓고 산 할머니들인데 저희 집 앞에 탑이 들어오면 좋겠냐, 그렇게 싫다는 송전탑 왜 세우냐, 너희 머리 꼭대기에 세워라.” 듣는 척도 안 하고 입 꼭 다물고 있는 거예요, 여경들은.